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극장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눈물 펑펑 쏟는 영화겠거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오니 감정이 흔들렸다기보다는, 거대한 그림 한 점을 넋 놓고 감상하고 나온 느낌이었습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신작 <햄넷>은 셰익스피어의 아들 이야기를 빌려, 슬픔이란 게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지를 조용하고도 묵직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애도란 이렇게 생겼습니다 — 같은 슬픔, 다른 방향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면은, 아이가 죽은 뒤 아내와 남편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무너져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내 아녜스는 런던으로 떠나버린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 윌은 그 자리에 없었다는 죄책감을 홀로 삼킵니다. 두 사람 다 같은 아이를 잃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죠.
이 영화가 꺼내드는 질문이 바로 이겁니다. 바다로 내려가는 사람이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보다 덜 슬픈 걸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에서도 아들을 잃은 부부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제가 직접 두 영화를 이어 생각해보니 이 질문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애도(bereavement)란 단어를 영문학 비평에서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상실 이후 남은 자가 겪는 전 과정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씁니다. 여기서 bereavement란 죽음 혹은 큰 상실 이후 심리적·사회적으로 재적응해 나가는 장기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그 과정이 한 가지 정답이 없다는 걸, 부부의 엇갈린 행동을 통해 보여줍니다. 슬퍼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덜 슬픈 게 아니라는 것,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말이 진심으로 와닿았습니다.
- 아녜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직접적으로 무너지고 원망을 표출
- 윌(셰익스피어): 그 자리에 없었다는 죄책감을 예술 창작으로 우회
- 두 방식 모두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의 핵심 시선
제시 버클리라는 배우에 대하여
배우 얘기를 길게 하면 "연출이 별로니까 배우로 때우나" 싶어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에서만큼은 제시 버클리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아들이 죽는 장면에서 그녀가 소리 없이 무너지는 연기는 진짜로 소름이 쫙 돋았거든요.
제시 버클리는 이전 작품들에서도 꾸준히 아카데미 후보로 거론됐던 배우입니다. <루시 앤 데이지>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출처: 아카데미 공식 홈페이지), 이 영화로는 여우주연상 레이스의 유력 주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제 생각엔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 연극이 끝나고 아녜스의 얼굴에 미소가 스며드는 그 표정으로 영화가 마무리되는데, 그 얼굴 하나가 영화 전체를 요약합니다. 이런 걸 두고 퍼포먼스(performance)라는 단어를 씁니다. 여기서 퍼포먼스란 단순히 대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내면 상태가 신체와 표정 전체로 전달되는 총체적 연기 행위를 뜻합니다. 제시 버클리는 이 영화 전체에서 그것을 해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영화 속에서 연극 무대에 오르는 햄릿 역 배우가 실제로 어린 햄넷 역을 연기한 아역 배우의 형이라는 점도 알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면 소름 돋는 캐스팅이었습니다. 아이가 죽지 않고 자라서 배우가 된 모습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것이죠. 저는 이걸 몰랐다가 나중에 알고 나서 그 장면이 다시 머릿속에서 재생됐습니다.
오르페우스 신화와 예술의 역할 — 소멸과 불멸 사이
이 영화에서 오르페우스 신화가 등장하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그냥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정도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되짚어보니, 그 신화가 이 영화의 뼈대 전체를 받치고 있었습니다.
오르페우스 신화(Orpheus myth)는 아내를 저승에서 데려오려다 금기를 어기고 뒤를 돌아봐 영영 잃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오르페우스 신화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서사로, 사랑과 상실, 그리고 인간이 운명을 거스르려는 시도를 상징하는 원형적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아녜스는 두 번 윌에게 "날 봐줘"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결혼식 날, 두 번째는 연극이 끝나는 무대에서. 첫 번째 돌아봄은 앞으로 닥칠 고통의 복선이고, 두 번째 돌아봄은 그 운명에 저항하는 행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예술이 자연이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합니다. 숲속 나무 구멍이 연극 무대의 구멍으로 이어지고, 그 구멍으로 어린 햄넷이 마지막으로 퇴장합니다. 자연에서 태어난 아이를 예술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순환 구조죠. 제가 이 부분을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그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만 느꼈는데, 나중에 구조를 이해하고 나니 설계가 얼마나 정교한지 감탄했습니다.
연극이 끝날 때 익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손을 뻗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막스 리히터의
자주 묻는 질문
Q. 햄넷 영화, 셰익스피어를 잘 몰라도 즐길 수 있나요?
A. 오히려 모르고 보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영화 자체가 셰익스피어임을 후반부까지 거의 드러내지 않고, 아녜스라는 여성의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도 셰익스피어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이야기로 먼저 와닿았습니다.
Q. 제시 버클리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나요?
A. 현재 시상식 레이스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과거 기네스 펠트로가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는데, 제 생각에는 연기만 놓고 보면 충분히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퍼포먼스였습니다.
Q. 클로이 자오 감독의 다른 영화도 비슷한 주제인가요?
A. 상실과 애도, 그리고 그것을 직면하고 나서야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을 반복적으로 그리는 감독입니다. <노매드랜드>에서도 남편의 죽음 이후 긴 여정 끝에 스스로를 직면하는 구조가 비슷합니다. 이 패턴이 본인 시나리오가 아닌 원작 소설 각색에서도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Q. 영화에서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왜 중요한가요?
A. 단순한 낭만적 삽화가 아니라 영화 전체의 서사 구조와 직결됩니다. 뒤돌아봄이라는 행위가 처음에는 불길한 복선으로, 마지막에는 운명에 대한 저항으로 반복되면서 아녜스의 내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 연결고리를 영화관에서는 놓쳤다가, 나중에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야 전체 그림이 보였습니다.
결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예상했던 것과 다른 자리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눈물이 터지는 영화를 기대했다면 그 기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입해서 우는 영화보다 이렇게 감탄하면서 보는 영화가 더 오래 남더라고요.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그 죄책감을 햄릿이라는 연극으로 빚어내고, 그 연극이 수백 년 뒤 지금도 무대에 오르는 사실을 생각하면, 소멸한 햄넷이 불멸하는 햄릿 속에 살아 있다는 말이 그냥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아직 극장 상영 중이라면 꼭 큰 화면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촬영이 집 화면으로는 반도 안 살아날 것 같습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아직 못 보신 분이라면 그쪽도 함께 찾아보시면, 두 영화가 셰익스피어라는 같은 인물을 얼마나 다르게 상상하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