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리메이크 아닌가" 싶어서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2019년 개봉작 <디 업사이드(The Upside)>는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을 할리우드 방식으로 옮긴 작품인데, 원작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던 저로서는 "이게 과연 그 감동을 따라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 의구심은 절반쯤 틀렸습니다.
줄거리 —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드는 케미
영화의 중심에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필립(브라이언 크랜스톤)은 전신마비(quadriplegia) 장애를 가진 억만장자 베스트셀러 작가고, 델(케빈 하트)은 가석방 직후 아무 일자리나 잡아야 하는 전과자입니다. 여기서 전신마비란 척수 손상 등으로 인해 사지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며, 24시간 생활 보조가 필요한 고강도 돌봄 환경을 전제로 합니다.
델이 처음 필립의 펜트하우스에 들어선 건 사실 구직 서류에 사인만 받으러 간 거였습니다. 실업급여를 유지하려면 구직 활동 기록이 필요했거든요. 그런데 뻔뻔하게 들어온 그 태도가 오히려 필립의 눈에 들어옵니다. 지원자들이 줄줄이 완벽한 스펙을 읊는 동안, 필립은 점점 지루해지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픽 웃었던 건, 필립이 찾던 게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상 밖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생활보조원(personal care attendant)이란 신체 기능을 대신해주는 전문 역할인데, 영화는 그 딱딱한 직업적 정의 너머에 있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파고듭니다.
델의 일과는 단순해 보이지만 만만치 않습니다. 24시간 모니터링, 식사 보조, 도관 교체까지.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영화는 장애를 소재로 감동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디 업사이드>는 그 선을 비교적 잘 지킵니다. 델이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필립이 냉소로 받아치는 장면들이 오히려 둘 사이의 거리를 자연스럽게 좁혀주거든요.
영화의 중반부에서 필립이 델에게 고백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패러글라이딩 중 벼락을 맞아 아내를 잃었고, 그날 이후 하루라도 빨리 숨이 멎었으면 한다고. 이 장면에서 델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동정하거나 울지 않습니다. 그냥 담배 한 대를 건네죠. 그 한 장면이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성격인지를 압축합니다.
필립이 1년 넘게 편지만 주고받던 릴리에게 델이 몰래 전화를 걸어버리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편지 펜팔(pen pal) 방식, 즉 직접 만나지 않고 글로만 감정을 쌓아가는 교류 방식인데, 필립은 자신의 장애가 부담이 될까 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걸 델이 단번에 끊어버리는 장면은 유쾌하면서도 짠합니다.
- 전신마비 재벌 필립과 전과자 백수 델의 조합 — 스펙 아닌 '의외성'이 둘을 연결
- 생활보조원이라는 직업을 통해 장애인의 일상을 비교적 현실감 있게 묘사
- 델의 직설적 태도가 필립의 감정적 폐쇄를 서서히 허무는 구조
- 클라이맥스는 하늘 — 페러글라이딩으로 시작된 비극을 하늘로 마무리
원작 비교 — 리메이크는 어디까지 따라갔나
제가 <언터처블 1%의 우정>을 처음 본 건 10년도 더 전 일인데, 그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프랑수아 클뤼제와 오마르 시의 케미는 솔직히 지금 봐도 흉내 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디 업사이드>를 볼 때 자꾸 원작과 비교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두 영화는 동일한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프랑스의 필리프 포조 디 보르고와 그의 보조인 압델 셀루의 실제 이야기(출처: IMDb, Intouchables(2011))가 원형이고, <디 업사이드>는 이를 미국 배경으로 옮긴 공식 리메이크입니다. 실화 기반 영화(biographical drama)란 실제 인물의 경험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장르로, 픽션보다 감정적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리메이크 영화는 두 가지 함정 중 하나에 빠집니다. 원작을 너무 충실히 따라가서 존재 이유가 없거나, 원작과 너무 달라져서 팬들에게 외면받거나. <디 업사이드>는 전자에 가깝습니다. 큰 서사 구조는 거의 동일하고, 주요 장면들도 원작의 위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배우가 다르면 결국 다른 영화가 됩니다. 케빈 하트의 델은 오마르 시의 드리스보다 더 직선적이고 시끄럽습니다. 브라이언 크랜스톤의 필립은 프랑수아 클뤼제보다 좀 더 감정을 누르고 있는 느낌이고요. 어느 쪽이 낫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배우의 연기 앙상블(ensemble), 즉 두 배우가 주고받는 호흡의 질이 영화 전체 분위기를 결정하는데, 두 버전은 그 호흡의 결이 다를 뿐 둘 다 나름의 완성도를 갖습니다.
출처: Rotten Tomatoes, The Upside(2019) 기준으로 <디 업사이드>의 관객 점수는 평론가 점수보다 훨씬 높습니다. 이건 제가 직접 확인해봤는데, 평론가들은 원작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했지만 일반 관객들은 그냥 즐겁게 봤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솔직한 생각은 이렇습니다. 저는 원작을 모르는 상태로 <디 업사이드>를 먼저 봤더라면 더 높은 점수를 줬을 것 같습니다. 원작을 아는 사람은 비교하면서 보게 되고, 모르는 사람은 그냥 좋은 영화로 보게 되는 구조거든요. 이건 리메이크 영화의 숙명 같은 겁니다.
그리고 솔직히 한 가지 더 — 필립이 저렇게 월급을 주면 저도 평생 친구 해드릴 수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이 영화를 보다가 진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에서 저런 관계가 얼마나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그 불가능성을 잠깐이나마 믿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디 업사이드 원작이 따로 있나요?
A. 있습니다. 2011년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Intouchables)>이 원작이고, 두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프랑스 귀족 필리프 포조 디 보르고와 보조인 압델 셀루의 실제 이야기가 두 영화의 공통 원형입니다. 원작을 먼저 보셨다면 <디 업사이드>에서 익숙한 장면들이 많이 보일 겁니다.
Q. 원작이랑 디 업사이드 중 어떤 걸 먼저 봐야 하나요?
A. 제 경험상 원작을 모르고 <디 업사이드>를 보면 더 몰입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원작을 먼저 보면 리메이크를 볼 때 자꾸 비교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둘 다 볼 계획이라면 <디 업사이드> 먼저, 이후 원작 순서를 추천합니다.
Q. 디 업사이드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네, 해피엔딩입니다. 델이 해고된 후 필립의 건강이 나빠지자 다시 돌아와 패러글라이딩을 선물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감동의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지는데, 마지막 장면은 처음 봐도 뭉클합니다.
Q. 케빈 하트가 진지한 연기도 되나요?
A. 생각보다 됩니다. 코미디 이미지가 강한 배우라 처음엔 어색할 수 있는데, 가족 장면이나 감정이 터지는 후반부에서 의외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브라이언 크랜스톤과의 호흡도 초반만 넘기면 자연스럽게 쌓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디 업사이드>는 원작의 그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볼 만한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일 오래 남은 건 스펙도 감동적인 음악도 아니라, 필립이 불편한 몸으로 페라리에 올라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 하나가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담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원작을 이미 보신 분이라면 비교하는 재미로,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선입견 없이 보시길 권합니다. 두 경우 모두 엔딩 장면에서 뭔가 남는 게 있을 겁니다. 그걸로 충분한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