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분만 보려다가 정신 차리니 6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드라마 <중독>은 그런 작품입니다. 칼도 없고 불도 없는데 사람 하나가 완전히 무너지는 걸 눈앞에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무엇을 보고 싶었던 걸까? 하고요.
리뷰- 이 드라마,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솔직히 처음 몇 분은 "또 교수-제자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 연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허문오, 20년 전 소설 한 편 내고 두 번째 작품을 못 쓰고 있는 남자. 학생들한테 "쓰레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던지는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 설정이죠.
그런데 이강이 나오면서 달라집니다. 강의실 맨 끝줄에 앉아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는 학생. 제출한 과제는 친구 김세윤의 가정에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문오는 그 글에서 뭔가를 느낍니다.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자기 안에 오래 쌓여 있던 질투와 열등감이 그 글 속에 그대로 박혀 있었으니까요.
문오에게는 오래된 상처가 있었습니다. 스타 작가 김수훈이 과거에 그의 소설을 향해 "할 얘기가 없으면 쓰지 말라"고 혹평했고, 그 한마디는 가시처럼 20년을 박혀 있었습니다. 이강의 글은 바로 그 상처를 긁어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드라마는 여기서 '신뢰할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 구조를 씁니다. 여기서 신뢰할 수 없는 화자란,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의 시점이 편향되어 있어 독자나 시청자가 진실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문오는 이강의 글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만, 우리도 그 시점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같이 속게 되는 구조입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원작의 문학적 향기가 느껴진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설계가 너무 치밀해서 상상력에 질투심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 허문오: 20년째 두 번째 소설을 못 쓴 교수. 수훈을 향한 열등감이 뿌리
- 이강: 맨 끝줄에서 모든 걸 관찰하는 학생. 처음부터 이야기를 설계하고 있었음
- 김수훈: 문오의 평생 라이벌이자, 드라마 전체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축
- 조현숙: 문오의 아내.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문오의 이야기 안에서 가장 지워진 인물
문오를 무너뜨린 건 거짓말이 아니라 욕망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문오가 어느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작은 선 하나를 넘고, 또 하나를 넘고, 그렇게 쌓이다 보니 어느 새 그는 돌아올 수 없는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시험지를 빼돌리는 장면에서 저는 처음으로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이강은 문오에게 이야기 조각을 하나씩 던집니다. 세윤의 아버지가 가사도우미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는다는 이야기, 살인미수 현장, 증거를 불태우는 아내. 그런데 문오가 놀라운 건, 그 어떤 것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이미 믿고 싶었으니까요.
여기서 드라마는 '액자식 서사(Embedded Narrative)' 구조를 활용합니다. 액자식 서사란,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구조로, 내부 이야기의 신뢰도가 외부 이야기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효과를 냅니다. 이강이 들고 오는 글이 내부 이야기이고, 문오의 현실이 외부 이야기인데, 이 두 층위가 뒤섞이면서 문오도, 시청자도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점점 구분을 잃게 됩니다.
결정타는 수훈의 집 화재 신고 장면이었습니다. 이강의 연락을 받은 문오는 119에 신고까지 하고 경찰에게 쫓기면서 그 집으로 달려갑니다. 그런데 집은 멀쩡했습니다. 그 순간 드러나는 건, 문오가 6화 내내 진실이라고 믿었던 사건들이 전부 이강의 텍스트 안에서만 존재했다는 겁니다. 이강은 문오에게 손 한 번 대지 않았습니다. 그냥 문오가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골라서 던져줬을 뿐입니다.
이 드라마의 결말이 단순한 반전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반전의 핵심은 "이강이 거짓말을 했다"가 아닙니다. "문오가 그 거짓말을 너무 믿고 싶어 했다"는 데 있습니다. 내러티브 심리학(Narrative Psychology)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 쉽게 빠집니다. 여기서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기존 믿음이나 욕망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문오가 무너진 건 이강의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문오 안에 이미 그 이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오를 완전히 끝낸 건 조현숙의 한마디였습니다. 아내가 이강과 만났다는 말을 듣고 문오가 가장 먼저 꺼낸 질문은 "그래서 잤냐"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문오라는 사람의 바닥을 봤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뭔지 끝까지 읽지 못한 사람. 그게 문오였습니다. 출처: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는 최근 몇 년간 도덕적 딜레마를 가진 인물을 통해 시청자의 자기 성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중독>은 그 흐름에서도 꽤 앞쪽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
시청자도 공범이었다는 것, 끝나고서야 알았습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문오가 속은 건 알겠는데, 저는 왜 이렇게 불편한 걸까. 그걸 생각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저도 내내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요.
드라마는 모든 사건을 문오의 시점과 이강의 글을 통해 전달합니다. 시청자는 문오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아는 전지적 관찰자가 아닙니다. 거의 같은 위치에 놓입니다. 세윤의 집이 수상해 보이고, 아버지가 위험해 보이고, 이강의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것은 문오만의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이 구조는 '메타픽션(Metafiction)'적 장치와 닿아 있습니다. 메타픽션이란 작품이 자기 자신의 허구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드러내는 기법으로, 독자나 시청자를 이야기 밖의 안전한 관찰자 자리에서 끌어내 이야기 안의 공범으로 만드는 효과를 냅니다. 이 드라마가 그 장치를 쓰고 있다는 걸 저는 결말에 도달하고서야 알아차렸습니다. 그것도 좀 당황스러운 방식으로요.
마지막 장면에서 이강이 헌책방 주인이 된 문오 앞에 다시 나타나 "진짜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고 합니다. 문오는 분노해야 할 그 순간에 눈을 빛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어떤 이야기?" 20년 넘게 못 썼던 사람이 쓴 두 번째 소설의 제목이 이 드라마의 제목과 같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우리도 이미 낚인 겁니다. 출처: 한국연구재단 학술지에 수록된 미디어 수용자 연구에서도 지적되듯, 시청자는 서사에 감정 이입할수록 진위 판단 능력이 낮아지고 이야기 안으로 편입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화자와 작가가 일치하느냐는 문제가 이 드라마의 핵심 떡밥이라고 느낀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이강이 쓴 이야기의 화자는 이강인가, 아니면 이강이 설계한 문오인가. 그리고 이강의 복수 서사 자체는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또 다른 허구인가. 드라마는 끝까지 이걸 확정해 주지 않습니다. 반전이 나왔는데도 정리가 아니라 의심이 남는 것, 그게 이 작품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드라마 중독 결말에서 이강의 복수 이유는 진짜인가요?
A. 12년 전 보육원에서 문오에게 받은 상처라는 감정적 개연성은 분명하게 그려집니다. 그런데 드라마는 그 기억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 이강이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다듬은 서사인지를 끝까지 확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것 자체가 이 작품의 의도된 장치로 읽힙니다.
Q. 드라마 중독에서 문오 아내 조현숙은 왜 이강 편을 들었나요?
A. 조현숙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문오의 이야기 안에 자신이 없다는 걸요. 이강이 찾아와 "선생님 이야기 속에 사모님은 없다"고 말했을 때, 현숙은 그걸 이강에게서 처음 들은 게 아니었을 겁니다. 이미 느끼고 있었던 걸 누군가가 말로 꺼내준 것에 가깝습니다.
Q. 드라마 중독 원작이 있나요?
A. 네, 원작이 있습니다. 원작이 희극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인지, 드라마에서도 어딘가 문학적인 향기가 스물거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원작의 질문을 단순히 옮겨오지 않고, 문오라는 인물에 한국식 위계와 열등감, 첫사랑이라는 감정을 겹겹이 쌓아 올린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Q. 드라마 중독 평점은 어느 정도인가요?
A. 제가 매긴 점수는 별점 5점 만점에 3.5점입니다. 이야기 구조와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재료를 담는 그릇인 연출과 음악이 한 톤 더 짙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용에 비해 화면과 소리가 조금 덜 채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결론
드라마 <중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칼 한 번, 불 한 번 쓰지 않습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오직 글이었습니다. 문오가 강이의 이야기를 믿은 건 그 이야기가 정교해서만이 아니라, 그가 이미 그 이야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훈의 몰락, 은주의 불행, 완벽해 보이는 집의 붕괴. 문오는 그걸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남의 고통을 이야기처럼 소비하고 싶었던 겁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한동안 댓글창을 열기가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연예인 스캔들, 누군가의 사생활을 둘러싼 자극적인 글. 거기에 반응할 때 저는 진실이 궁금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길 기다렸던 걸까요. 이 드라마가 불편하게 남는 건 바로 그 질문 때문입니다. 한 번쯤 이강의 설계에 속아봤다면, 그다음엔 문오 옆에서 내 자신을 한번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