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영화는 감동은 있지만 완성도가 아쉽다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애니메이션 다윗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을 절반쯤 접어야 했습니다. 킹 오브 킹스보다 낫다는 후기가 쏟아지길래 반신반의하며 극장에 들어섰는데, 박보검의 더빙 목소리가 터지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기독교 영화는 뻔하다는 편견, 이 영화 앞에서 흔들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하면 교육적이지만 극적 긴장감이 부족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킹 오브 킹스를 보면서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고양이와 어린아이가 계속 등장해서 흐름이 툭툭 끊기고, 중반부부터는 솔직히 집중력이 흐트러졌습니다. 그래서 같은 제작사인 엔젤 스튜디오의 신작이라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낮춰 뒀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처음부터 호흡이 달랐습니다. 양을 치며 맹수를 돌팔매로 쫓던 소년이 나중에 골리앗의 이마를 정확히 명중시키는 장면, 그 복선 구조 자체가 꽤 탄탄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데, 초반에 무심코 지나쳤던 장면이 후반에 "아, 그래서였구나" 하고 딱 맞아떨어지는 쾌감이 있었습니다.
선지자(Prophet)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선지자란 신의 계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인물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 시대에는 사제나 선지자 같은 중개자를 통해서만 신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사무엘이 바로 이 역할입니다. 그가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장면, 즉 도유(塗油) 의식이 나오는데, 도유란 선택받은 자에게 왕권이나 사명을 부여하는 이스라엘의 고대 의식을 의미합니다. 이 장면이 영화 전체의 축이 되기 때문에, 성경 배경 지식이 없어도 맥락은 충분히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막을 헤매다 낯선 사람들에게 구조되는 장면에서, 둘이 갑자기 친한 척을 하는데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설명이 전혀 없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개연성의 구멍은 몰입을 한 번씩 깨뜨립니다. 다윗의 형 캐릭터도 사울 편을 들었다가 다윗 편을 들었다가 다시 사울로 돌아가는 행동이 반복되는데, 장남 콤플렉스를 가진 첫째가 어린 동생을 왕으로 인정하기까지 겪는 내적 갈등으로 읽으면 이해는 됩니다. 다만 그 심리 변화를 보여주는 서사가 너무 짧습니다. 각색(Adaptation), 즉 원작의 내용을 영상 매체에 맞게 재구성하는 작업에서 좀 더 용기를 냈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 엔젤 스튜디오 제작, 킹 오브 킹스와 동일한 그림체
- 감독: 필 커닝햄 & 브랜트 도스 공동 연출
- 러닝타임 109분, 전체 관람가
- 복선 구조는 탄탄하지만, 인물 간 관계의 개연성 보완이 아쉬움
박보검 더빙과 뮤지컬 사운드,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더빙 애니메이션은 원판보다 어색하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합니다. 저도 평소에는 웬만하면 자막판을 선택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더빙판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박보검이 성인 다윗의 목소리를 맡았는데, 발성과 호흡이 캐릭터와 너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을지 감이 안 올 정도였습니다.
특히 차지연 배우와의 듀엣 장면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뮤지컬 영화(Musical Film)는 서사를 노래로 전달하는 방식인데, 여기서 뮤지컬 영화란 단순히 OST가 삽입되는 수준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감정과 이야기가 노래 안에 녹아들어 극의 흐름 자체를 이끄는 형식을 말합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치는 그 순간, 극장 사운드 시스템을 타고 퍼지는 울림이 심연 어딘가를 건드렸습니다. 제가 직접 느꼈는데,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습니다.
엄마가 다윗에게 뜨개질 작품을 보여주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 한 코가 뭔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완성되면 엄청난 작품의 일부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장면이 저한테는 제일 오래 남았습니다. 양을 지키려고 던지던 돌팔매가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훈련이었는지 다윗은 몰랐고, 기름부음을 받은 날 바로 왕이 된 게 아니라 수십 년간 쫓기는 삶이 이어졌습니다. 서사 신학적(Narrative Theology) 관점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개인의 고난이 더 큰 서사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여기서 서사 신학이란 신앙의 진리를 교리가 아닌 이야기 구조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영화가 이 메시지를 가장 영리하게 담아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운드 시스템이 좋은 극장에서 보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 영화는 사운드의 완성도가 관람 만족도와 직결됩니다. 또한 아이들이 보기에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각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지루해하는 경우를 실제로 목격했고, 제 생각에도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은 되어야 내용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엔젤 스튜디오 공식 사이트(출처: Angel Studios)에서도 이 작품을 패밀리 영화로 분류하고 있지만, 저는 영유아 동반 관람보다는 초등 고학년 이상과 성인 관람을 더 권하고 싶습니다.
참고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이 작품은 전체 관람가로 분류되어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등급 자체는 전체 관람가이지만, 내용의 밀도는 생각보다 묵직합니다.
체크포인트
Q. 애니메이션 다윗, 킹 오브 킹스보다 재밌나요?
A. 제 경험상 다윗이 더 낫습니다. 킹 오브 킹스는 고양이와 어린아이 장면이 반복되며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컸는데, 다윗은 골리앗 전투를 중심으로 서사가 훨씬 역동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요소도 다윗 쪽이 더 풍성합니다. 킹 오브 킹스를 재밌게 봤다면 이번 작품은 더 만족스러울 가능성이 큽니다.
Q. 박보검 더빙판이랑 자막판 중 어떤 걸 봐야 하나요?
A. 저는 평소 더빙판을 잘 선택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큼은 더빙판을 강하게 권합니다. 박보검의 발성과 호흡이 캐릭터와 잘 맞고, 특히 차지연과의 듀엣 장면은 한국어 더빙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울림이 있습니다. 사운드 시스템이 좋은 극장을 선택하면 효과가 배가됩니다.
Q. 아이랑 같이 봐도 괜찮은 영화인가요?
A. 전체 관람가이지만, 내용이 생각보다 묵직합니다. 제가 극장에서 어린아이들이 지루해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개인적으로는 초등 고학년 이상부터 내용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유아를 데리고 가시면 부모가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Q. 성경을 모르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나요?
A.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정도만 알아도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선지자나 도유 의식 같은 개념이 설명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부분이 있어서,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깊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관심이 생겼다면 사무엘상 16장부터 읽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결론
객관적인 영화 완성도만 놓고 보면 B에서 B+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연성의 구멍이 몇 군데 있고, 각색의 과감함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서며 오래된 감정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지금 내가 던지고 있는 돌팔매가 무엇을 위한 연습인지 모를 때도, 언젠가는 그게 다 하나의 그림 안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것. 그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있는 분이라면 감동은 보장이고,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거나 박보검 팬이라면 더빙판으로 꼭 극장에서 보시길 권합니다. 사운드가 좋은 상영관을 고르는 것, 잊지 마십시오.